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무하마드 알리 (문단 편집) == 여담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50522_SNUT_AliListon-Color.jpg.CROP.original-original.jpg|width=100%]]}}} || 해당 사진은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KO승을 거둔 뒤 그에게 포효하는 모습. 이 당시 신인 선수였던 알리는 당대 최강의 복서 중 한명이었던 리스턴을 상대로 압도적인 언더독 판정을 받고도 1차전에서 TKO승, 2차전에서 KO승을 거두며 복싱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이 경기는 그가 '캐시어스 클레이'가 아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출전한 첫번째 경기다.''' 이 사진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 현재는 알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사진이지만 이 사진을 찍은 사진 기자는 당시 인턴 기자였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보길 원했지만 상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면박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턴 기자는 밀려난 자리에서 최고의 사진을 찍어냈고, 그 상사는 알리의 가랑이 사이에 놀란 표정으로 남게 되었다. * 상대를 교묘하게 비웃고 도발하는 [[트래시 토크]]와 거침없고 화려한 언변으로도 유명했으며, 단순히 거칠고 조롱적인 발언뿐만이 아니라 언변 속에 녹아있는 뛰어난 [[라임(동음이의어)#s-1|라임]] 구성과 [[시]]적인 문장 구성이 탁월했고 대중들이 자신을 지지하게끔 하는 '정치적인 시'(Political poetry)에 가까운 발언을 잘 구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 전 선수간의 언쟁을 일으켜 대중들에게 흥미를 유발시키는 걸 즐겼다. 무하마드 알리의 언변은 단순히 마케팅에 국한되는 흥미 유발과 상대방에 대한 도발만이 아니라 이외의 영역에서도 잘 나타난다. 위의 어록 문단만 봐도 그렇다. 상기한 베트남 전쟁 징집 반대로 인한 법정 공판에서의 항변과,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말도 그의 언변 능력을 잘 나타내는 사례이다. 또한 알리는 '스포큰 워드'[* 한문으로는 '口語'. 말로 하는 시, 혹은 글을 뜻한다. 즉석에서 워드 플레이와 운율 구성에 초점을 맞춰 재치있게 언변을 구사하는 일종의 언어 예술이다.]의 달인이었다. 혹자는 무하마드 알리의 이런 언어 구사가 [[힙합]]에 영향을 줬다고도 한다.[[https://www.rollingstone.com/music/news/muhammad-ali-worlds-greatest-boxer-was-also-hip-hop-pioneer-20160604|#]] * 스포츠계에서 최고의 선수에게 붙이는 'Greatest Of All-Time', 줄여서 'GOAT'라고 하는 수식어는 무하마드 알리로부터 시작됐다. 알리가 스스로 'I am the Greatest!'(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현역 시절 자주 하고 다녔고, 실제로 알리가 역대 최고의 권투 선수로 평가되며 이러한 수식어가 안착됐다. (자신이 한 말을 현실로 만든 GOAT 그 자체다!! 2.7초 만에 헤비급의 몸으로 12 ~ 13번의 펀치를 날린 것, 지금까지도 복싱은 물론 MMA에서도 쓰이는 풋워크인 알리스텝을 만든 것, 알리셔플을 통해 진짜로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것을 보여준 것, 아웃복서 말고도 스워머 스타일, 카운터 복서 등의 다양한 스타일을 완벽히 구사 한 것, Rope-a-dope 같은 엄청난 전략들을 선보인 것과 춤을 추듯 풋워크를 밞으며 링을 지배한 것 등의 복서로서의 업적과 사회운동가로서의 업적 모두 엄청난 평가를 받아서 역대 최고로 평가되게 되었고 알리 스스로가 자주 한 말인 ‘I am the Greatest!’를 현실로 만들게 되었고 GOAT로 평가되며 GOAT 그 자체가 되었다!!) [[조지 포먼]]: [[무하마드 알리]]는 복싱보다 거대하고 위대하다!, [[알리]]는 GOAT다! 조지 포먼의 평가 말고도 다양한 사람들의 평가에서도 GOAT로 평가받는다. (포먼은 특히 알리를 높게 평가하고 존경했다.) * 알리를 상징하는 말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말은 원래 경기 전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허세이자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하는 도발이었으며, 그는 정말 본인의 말대로 알리스텝과 알리셔플을 이용하여 다양한 콤비를 넣거나 다양한 전략을 보여주는 플레이하며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이와 같은 경기 전 도발을 통한 마케팅은 스포츠 계에서 하나의 전술이 되었다. 알리의 이런 언행일치는 '''마케팅과 캐릭터를 일치시킨 모범적인 사례'''로 유명하며 특히 빠른 스텝과 디펜스, 펀치 콤비네이션은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2006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카(애니메이션)|카]]에서는 '''"[[캐딜락]]처럼 날아서 [[BMW]]처럼 쏜다"'''로 패러디되었다.[* 미국 VIP 의전차의 상징이 캐딜락이고, 독일 스포츠카의 대명사가 BMW다. 백악관에서 [[에스컬레이드]]를 개조한 방탄차량을 이용하고, BMW는 [[BMW M]]이라는 고성능 디비전으로 스포츠 세단의 역량을 극대화했다. 당시에는 8시리즈가 없었다.] [[지코]]의 '천둥벌거숭이'에서 [[Jvcki Wai]]의 벌스 중에도 '알리처럼 날아서 나비효과'라는 가사로 인용되었다. * 현란한 풋워크로도 유명한데 아예 '알리 스텝'이란 [[풋워크]]도 따로 있다. 다른 스텝에 비해 빠른 속도를 자랑하여 복싱은 물론이고 [[종합격투기]]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기술이다.(복서 중에선 파퀴아오, MMA선수 중에선 도미닉 크루즈, 이스라엘 아데산야, 맥스 할로웨이가 알리 스텝을 쓰는 선수로 유명하다.)[[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ndheim&logNo=9004231952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알리 스텝'에 대한 설명]] 조 루이스에 의하면 [[이소룡]]도 알리를 존경하여 격투기 트레이닝의 90% 이상을 이 풋워크 연습에 투자하였다고 한다. 슈거 레이 로빈슨이 스텝의 중요성을 일깨운 이후, 스텝의 발전과 활용도를 확장 시킨 것이 알리라고 할 수 있다. * 프로 데뷔 이후 강제 공백기를 맞이하기까지인 1960년부터 1967년까지의 알리는 30전 전승,[* 공백기 이후까지 합치면 1970년 10월의 제리 쿼리 전과 같은 해 12월의 오스카 보나베나 전까지 2연승을 추가하여 데뷔 이후 32연승이다. 보나베나 전의 다음 경기인 1971년 조 프레이저 전에서 프로 데뷔 이후 처음 패배했다.] 타이틀 9차 방어에 성공하여 복싱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선수로 평가 받는다. 그중에서도 1966년 3월부터 1967년 3월까지가 가장 압도적이었는데, 알리는 그 1년 사이에만 무려 7번의 경기를 치뤘고 모두 승리했다. 단순 경기수만 놓고 본다면 1961년에 8번, 1962년에 6번의 경기를 치른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66~67년도의 기록이 대단한 점은, 이 시기가 바로 알리가 베트남전 징병을 거부하면서 FBI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등 미국 정부에게 가장 심한 압박을 받는 동시에 법정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는 점이다. 거기다 신인 시절이었던 61~62년과 달리 이 당시의 알리는 헤비급 챔피언으로서 매 경기가 타이틀 방어전이었기에 대중들의 관심도 엄청나게 높았던, 그야말로 정신적 고통이 가장 심할 때였다. 그리고 알리는 이 '1년 간 7경기 전승'이라는 대기록을 마지막으로 징병 거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선수 자격과 챔피언 타이틀을 박탈 당하고, 1967년 1심에서의 유죄 판결이 1970년 2심에서의 무죄 판결로 뒤집어질 때까지 선수 생활을 아예 하지 못했다. 즉 멀쩡히 유지 중이던 챔피언 타이틀을 강제로 빼앗긴 것인데,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알리가 '강제 공백기'만 겪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아는 지금의 알리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모습과 대단한 기록을 써내려 갈 수도 있었을 거라며 아쉬워 하기도 한다. 이후 복귀는 1967년 3월 22일 조라 폴리와 치른 방어전 이후로 약 3년 7개월이 지난 1970년 10월 26일 제리 쿼리와의 경기였다. * 은퇴 후 토크쇼에서 [[마이크 타이슨]], [[슈거 레이 레너드]]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토크쇼 진행 중 최근 주목하는 복서가 누구냐는 질문에 알리는 타이슨을 뽑았는데, 이 후 타이슨과 레너드가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다. 이 당시 알리는 파킨슨병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 두명이 스테이지로 걸어오자 예상 외의 등장에 깜짝 놀랐는지 벌떡 일어난다. 진행자가 알리에게 "당신의 전성기 때 이 친구(타이슨)과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나요?"라고 하자 알리가 말대신 손으로 타이슨을 가리키며 "난 주먹이 세진 않았지만 빨랐어요. 만약 저 친구가 날 쳤다면..."이라고 말하며 뒤로 넘어지는 액션을 취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타이슨이 손사래를 치며 '''"전 알리의 말을 안믿어요. 왜냐하면 저분은 저보다도 강한 펀쳐인 [[조지 포먼]], 어니 세이버스[* 조지 포먼 못지 않은 권투 역사상 최고의 핵주먹 중 한 명으로, 이 토크쇼에서 알리가 자신이 겪어봤던 가장 강했던 펀처라고 말한 선수이기도 하다.]에게 맞고도 이겨낸 위대한 챔피언이에요. 저도 제가 대단한 걸 알지만, 모두의 머리가 고개 숙이고, 모두의 혀가 진실되게 말해야하는 가장 위대한 사람은 여기 이 분입니다."'''라고 답했고, 방청객들은 환호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ki4UKsI8bms|#]] 여기서 타이슨이 뒷붙혀서 하는 말이, '''"오히려 꼬맹이었던 저야 말로 알리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행동을 따라하면서 '나는 무적이다, 나는 누구와 싸워도 이길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리는 제가 강해질수 있게 된 힘이었어요"'''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쇼맨십이나, 자신감이나, 선수로서 마음가짐 같은 당장 피지컬 외, 그리고 경기 외 사회적인 면으로도 알리가 후대 복서들에게 남긴 족적을 느낄 수 있다. * 1976년 6월 27일 [[한국]]에 온 적이 있다. [[이준구(태권도)|이준구]]의 초청으로 인해 온 것인데, 사실 당시 유신 독재 체제와 사회적 문제 및 사건들로 인한 국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정권의 이벤트에 가까웠다. 이준구의 친구인 중앙정보부 요원이 이준구에게 "알리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느냐"라고 물어본 것이 발단.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알리의 팬이기도 했다. 알리와 한국간의 금전 거래는 하나 없는 무대가성 방문이었다고. 알리는 한국에서 3박4일 간 머물렀으며, [[신세계조선호텔]]에서 묵었고 [[MBC]]의 특집 방송에 출연, [[육영수]] 묘역 방문, 공장 방문, 군 부대 방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갔다. MBC에서 특집 쇼를 방송하면서 여자 연예인들이 알리와 껴안거나 함께 춤을 췄다는 이유로 당시 방송심의위원회의 경고를 받아서 그 다음 주에 경고받은 내용을 방송 전에 내보냈다. 알리의 출국일이 돼서야 청와대 측의 접근이 있었으나 비행기 시간 때문에 박정희와 만나진 않았다. 입국 직후 [[서울]] 시내에서 3시간 동안 카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200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인구가 725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당시 알리의 인기가 얼마나 드높았는지 알 수 있다. 이 카 퍼레이드는 MBC가 생중계했다.[[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1899|참고]] * '''자살하려는 사람을 설득해서 구해낸 적이 있다.''' 자살을 시도하려는 남자는 알리와 같은 흑인 남성이며 당시 나이는 21세였다. 1981년 1월 19일, 이 청년은 투신자살을 하려고 LA의 한 건물 9층 난간에 올라가 있었고, 현장에는 경찰이 출동한 상태였으며 시민들도 몰려들어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곳 근처를 알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자살시도 소동이 벌어진 것을 목격한 알리는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그 청년이 있는 건물 9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 청년은 건물의 실내가 아닌 건물 바깥쪽에 위치한 계단의 난간에 있었고, 알리는 우선 계단쪽으로 직접 들어가진 않고 건물 실내의 창문으로 몸을 내밀어 그 청년을 바라보며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이 '''"세상 사람들 그 누구도 내가 죽는다 한들 관심조차 없을 텐데, 왜 당신은 나한테 관심을 주는 거죠?"'''라고 묻자 알리는 '''"[[여러분(윤복희)|당신은 제 형제니까요.]] 전 당신을 사랑합니다. 전 그저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이후 알리는 청년이 걸터앉아 있는 난간으로 직접 다가가서 그 청년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줬고, 청년은 스스로 난간에서 내려와 알리와 함께 건물 바깥까지 내려왔다. 건물 1층에서 알리와 청년이 함께 나오자 현장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시민들은 알리를 연호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LFCH9QdMd2Y)]}}} || * 1980년대 WWF에 출연하며 락 앤 레슬링 커넥션의 주축으로 WWE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WWF 레슬매니아 I]]의 호스트로 초대받았다.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최종 성화 점화자로 등장하여 손을 떨면서 성화대에 불을 붙였다. 당시 파킨슨병으로 투병중이던 알리가 쉽게 불을 붙이게 하기 위해 이미 완성되어있던 성화대의 설계를 변경했다고 한다. * 그의 딸 라일라 알리도 여자 프로 권투선수로 활약했고 세계 챔피언 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그 아버지에 그 딸임을 보여주었으며 라일라는 2007년 이후 은퇴한 상태. 방송 진행자 등의 일을 하는 듯하다.[* 2014년 [[팔콘 라이징]] 이라는 액션 영화에서 주인공의 누나로 나왔다. 애석하게도 액션 담당은 아니다.] 여담으로 라일라는 무하마드 알리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베로니카 포셔 알리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며, 어머니의 외모를 이어받아서 아름답게 생겼다.[[http://www1.pictures.zimbio.com/gi/Laila+Ali+2012+Summer+TCA+Tour+Day+4+Ta4CPePmWS7l.jpg|라일라 알리의 최근 모습]], [[http://www.aktivni.si/media/cache/upload/Photo/2012/08/02/mohammad-ali-veronica-porsche_galleryImage.jpg|무하마드 알리와 베로니카]]. 또한 [[아디다스]] 광고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해서 카리스마를 뽐내기도 했다. *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 때는 딸과 함께 휠체어를 타고 등장. 원래는 올림픽 오륜기 게양식에 같이 참가하려고 했지만 건강상 문제로 오륜기를 만져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알리(영화)|알리]]>에서 [[윌 스미스]]가 맡아서 알리의 일대기를 다루었다. 작품성은 좋았으나 흥행은 실패했고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 당시 상영시간이 길다고 30분 가까이 삭제하고 개봉했다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더더욱 극장에서 외면당했다. 극장 수익으론 해외 수익까지 다 합쳐도 제작비도 못 건졌고 그나마 DVD 같은 2차 판권 시장은 꽤 괜찮게 팔려 수익을 거둬들였다. * 위 영화의 주제곡인 [[R. Kelly]] - The World's Greatest 또한 무하마드 알리로부터 영감을 받은 곡이다. * 이 사람을 바탕으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록키의 라이벌 [[아폴로 크리드]]다. 당시 영화를 찍을 때 스타 중의 스타였던 알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데 실제 그는 록키를 보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으며 심지어 [[실베스터 스탤론|스탤론]]에게 헌정하는 시를 써서 바치기까지 했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내가 진짜 아폴로 크리드다!!" 라면서 뛰쳐나와 스탤론과 스파링을 벌이기까지 했다고.[[http://youtu.be/o3g7kclmm0I|보러 가기]] 여담으로 록키에는 그의 라이벌 조프레이져도 까메오로 잠깐 출연한다. 생각해보면 록키에서 아폴로 크리드는 챔피언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무명 복서였던 록키에게 도전할 기회를 준 [[대인배]]에 록키와 명승부를 펼친 훌륭한 복서였으니 무하마드 알리의 신경을 크게 거슬리게 할 것도 없었다. 딱히 있다면 영화 초반에 록키와의 경기를 계획하면서 엄청 거만한 모습을 보였다던가, 록키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방심했다가 훅 갈 뻔한 장면 정도? * ebs [[지식채널 e]]에서 무하마드 알리를 주제로 해 방영한 적이 있으며 5분 짜리 영상에 무하마드 알리의 생애를 감동적으로 요약해 놓았다. * 1977년 개봉한 알리의 생애를 다룬 전기 영화 The Greatest(더 그레이티스트)에서 나온 주제가 The Greatest love of all이 유명하다. 부른 가수는 [[조지 벤슨]].[* 1986년 [[휘트니 휴스턴]]이 리메이크했으며, 해외에선 이 버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이탈리아]]의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알리가 수박을 퍼먹으면서 연신 트림을 하는 등 매우 무례한 태도로 팔라치를 맞았다고 한다. 팔라치는 두번째 트림을 하는 것까진 참았으나 알리가 세번째 트림을 하자 그에게 마이크를 집어 던지면서 "이런 무식한 촌놈이 챔피언이라니!"라고 욕했다고 한다. * 많은 1세대 미국 [[무슬림]]이 그랬듯이 흑인우월주의를 지향하는 신흥종교였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에 입교하였고 후에 교단과 함께 정통 수니 [[이슬람]]으로 전향하였다. 이후 알리 개인은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에 깊게 심취했다. * 2015년 12월에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무슬림들을 입국금지 시킬 것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자, 알리는 즉각 성명을 내고 "나는 무슬림이다."라고 말문을 열며 "우리 무슬림들은 이슬람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를 위해 쓰는 사람에 맞서 싸워야 한다" 라고 강조하는 동시에 "파리나 샌 버나디노, 그밖의 세계 어디에서도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이슬람이 아니다."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알리가 언어능력을 잃기 전 공식석상에서 행한 마지막 발언으로 알려지며 주목을 받았다. 과연 그답게 마지막 말 역시 피부색과 종교, 성별, 빈부 할 것 없이 차별로 점철된 이 세상에 철권을 날린 셈이다. * 이탈리아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인 마르코 멘고니의 2018년 노래 중 Muhammad Ali(무하마드 알리)가 있다. * 알리의 개명 전 이름 '캐시어스 클레이'를 본딴 '카시우스(Cassius)'라는 [[바다악어]]가 있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파충류인 바다악어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덩치를 자랑하는 악어다. * 미국뿐만 아니라 1960,70년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흑인 스포츠 스타여서 가끔씩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거나 방문하기도 했었다. * 마이클 조던 같은 다른스포츠의 GOAT들이나 유명인들과의 만남등 다양한 활동이 있다. * 복싱과 관련된 웹툰, 영화, 만화, 애니 등 다양한 콘텐츠의 캐릭터들에 영향을 주었고 복싱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와 관련된 콘텐츠도 많고 영향을 주었다. (광고에도 많이 나왔다.) * [[펜실베이니아주]], [[루이빌]], [[라스베이거스]]에 훈련캠프가 있다. * [[콜드플레이]]의 7집 앨범 수록곡 중 Everglow의 Single버전에서 노래 후반부에 알리의 연설이 나온다. * [[https://en.wikipedia.org/wiki/Superman_vs._Muhammad_Ali|슈퍼맨과 싸운 만화책이 있다.]] 한 외계인이 자기네 최강의 전사와 싸울 지구 최강의 전사로 슈퍼맨을 선택하자, 알리가 '슈퍼맨은 지구인이 아니고 슈퍼파워를 가졌으니 불공평하다'라며 누가 지구 최강의 전사일지 판가름낸다는 내용. 말도 안 되는 대결 같지만 붉은 태양( 슈퍼맨의 힘을 일시적으로 빼앗는다.) 근처의 행성에서 경기를 치렀기에 슈퍼맨은 일반인인 상태였다. [[http://2.bp.blogspot.com/vaEA6MC6ye0PDiJ52tlQ4x8MAP7xtPstNMW9Ry9ruZD1OxTMb8xKt-KQWXfZARfLS4FPeLeVwlY=s1600|그리고 대전끝에 알리가 슈퍼맨을 쓰러트린다!]] [[http://2.bp.blogspot.com/RjnF6oAM5CPDpDpWQgsYhNE_Z2cv4ypERmGXQW5Y4R9jI8VUGf-mWBvgDKtV8GEW-kHnauMFFco=s1600|들것에 실려나가는 슈퍼맨]] 이후 외계인 챔피언과 대전에서 알리가 승리를 거두고, [[http://2.bp.blogspot.com/ZmLWhVUxlKmVnqQNiGcKk4C-V4N-OHcUmN4oIMDdF5kNeb9REJaHjoW1u01iQnX9qMg3fyQKqEc=s1600|서로 악수를 나누며 훈훈하게 마무리.]] * 알리셔플(ali shuffle) [youtube(3Fr1E1c1akI)] 노가드 회피 비슷하게 상대방을 농락하면서 상대의 시선과 타이밍을 빼앗는 기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쇼맨십 기술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알리]]는 이 기술이 단순히 광대놀음이 아닌 실용성을 가진 기술이라고 설명했고 또 실제 시합에서 여러번 사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클리블랜드 윌리엄스]]와의 경기, 브라이언 런던과의 경기, [[조지 포먼]]과의 경기 초반, [[조 프레이저]]와의 3차전인 Thrilla In Manila 경기에서 사용하였다. 현재까지도 쓰이며 [[복싱]]은 물론 [[MMA]]에서도 쓰인다. [[https://youtube.com/shorts/0KnlxSd9o9c?si=WPzvjfVphwQkhYPw|알리의 설명]] * 현 복싱 최강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인 [[타이슨 퓨리]]를 상대로 이긴거나 마찬가지인 결과를 만든 [[프란시스 은가누]]는 과거에 막노동을 하던시절, [[MMA]]선수로 활동 할 때, 퓨리전을 준비하며 [[마이크 타이슨]]과 함께 훈련을 할 때 [[무하마드 알리]]의 경기 영상을 보며 [[복싱]]을 연습했었다. * 1978년 영화 천국의 사도(Heaven Can Wait) 제작 당시 주연으로 맡기를 제안받았지만, 선수생활 집중 이유로 거절하였다. * [[마이클 B. 조던]]이 알리의 일대기를 TV 시리즈로 제작한다고 한다.[[https://deadline.com/2021/02/michael-b-jordan-muhammad-ali-jay-z-tv-series-amazon-alexa-tom-clancy-without-remorse-outlier-society-overall-deal-jennifer-salke-1234689456/|#]] * 노래도 잘 부른다. 1963년 [[Stand by Me]]의 [[https://youtu.be/BtIF0OqRnOE|커버송]]을 발표했다. [각주][[분류:미국의 권투 선수]][[분류:1942년 출생]][[분류:1960년 데뷔]][[분류:1981년 은퇴]][[분류:2016년 사망]][[분류:루이빌 출신 인물]][[분류:아프리카계 미국인]][[분류:영국계 미국인]][[분류:아일랜드계 미국인]][[분류:이탈리아계 미국인]][[분류:1960 로마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미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미국의 무슬림]][[분류:개명한 인물]][[분류:미국의 사회운동가]][[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분류:호흡기질환으로 죽은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